"언제나 연인의 품속같은
또,다,른, 행복으로의 시작
라노비아와 함께 떠나는 아름다운 글과 음악여행 "아홉"

♣사람은 고독하다.사람은 굳세지 못하고, 지혜롭지 못하고
여기저기에서 비참한 모습을 보인다. 비참함과 부조리가 아무리 크더라도,
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운명일지라도 우리는 고독을 이기면서
새로운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결의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

-라이너 마리아 릴케-(독일의 시인)


♥안개 속에 숨다

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
나무 뒤에선
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
안개속에서는
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
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
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
떄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
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
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,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
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런인 것도 없다
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
시간이 가면
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
적당한 간격으로 서서
서로를 바라본다
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
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
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
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
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

- 류시화